[보수동 헌책방 골목] 헌 책들의 숨소리를 느끼며
부산에 놀러갔다가 시간이 남아 들렀던 보수동 헌 책방 골목.
자갈치 역에서 내려 광장시장보다 커보이는 국제시장을 설렁설렁 구경하다 보면 어느덧 입구가 보인다.
골목을 들어서자 마자 책 특유의 냄새가 진하게 느껴진다.
왠지 쾌쾌한 이란 단어가 어울릴 법도 한데.. 그렇지도 않다.
만화책이나 오래된 잡지 한 질을 끈으로 묶어놓은, 진짜 헌 책을 취급하는 가게가 있는가 하면,
새로 나온 참고서나 신간들을 서점들보다 조금 싸게 파는 가게들도 중간중간 보였다.
헌 책방 골목을 찾는 사람들은 바쁘지 않다.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충분히 있을 때 비로소 이곳을 찾게 된다.
그래서 발걸음이 더 천천히 떨어진다.
그냥 휘 돌아보며 구경하는 재미도 있지만..
꼭 찾아야 되는 한 권의 책을 향한 간절한 기대를 가지고,
건성건성 보는 듯 하면서도 이잡듯 온 골목을 다 뒤지다가,
책더미 아래에 먼지 하나 묻지 않은 채 깨끗하게 숨어있는 책을 발견했을 때..
드디어 헌 책방 골목에 온 보람과 기쁨을 찾게 된다.
어려운 시절엔 책을 출판하는 곳도 적었고, 남들이 보던 책이라도 구할 수 있으면 다행이었다.
점점 헌 책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고 헌 책방이 성황을 이루어 골목이 형성되었다.
어느 하숙생의 단칸방 구석 책장에서 잠을 자던 헌 책들은 간절한 몇 푼에 팔려 다시 책방으로 돌아왔지만,
다른 주인을 만나기까지는 또 많은 시간이 흐른다.
요즘엔 헌 책방을 찾기가 힘들다.
그리고 나도 참 책을 안읽게 된다. 손을 바쁘게 하는 것들이 왜그리 많은지..
천천히 책장을 넘기던 그 여유가 많이 사라졌다.
새 책은 주인을 만나서 펼쳐지기 전까지는 숨을 쉬지 않는다.
처음으로 누군가의 손길이 닿아 빳빳한 종잇장을 넘기고 빛이 책장 사이로 스며드는 순간 부터 생명을 갖기 시작한다.
헌 책이 가득한 책장 앞에 서면 숨소리가 들린다.
저마다 다른 향기와 다른 이야기를 내뿜고 있다.
그 진한 향기에 취하고 싶은 날..
헌 책방 골목을 다시 찾는다.
Busan , Korea
TC-1, Tmax400 / 20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