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동경여행] 도쿄가 좋아지기 시작한 이유
홀로 도쿄를 처음 찾았을 때의 설렘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내가 거닐었던 일본여행의 출발점과 끝점을 지도에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수동 카메라 한대 들고 터벅터벅 걸으며 남겼던 도쿄의 작은 흔적들.. 나의 첫 일본 여행…
日 本
이 단어만 들어도 괜히 피가 끓어 오르기 시작하는 바이오 리듬이 느껴진다면.. 그대는 한국인이 맞다..
일본… 가깝고도 먼 나라..
2006년 5월 12일
저녁 뉴스에서 신사참배나 독도 문제로 식사 후 기분 좋은 사과 한 쪽의 여유를 방해하는 나라..
’국화와 칼’ 이나 ‘일본은 있다,없다’ , ‘먼나라 이웃나라’ 등 어려서부터 책으로 알긴 알았지만 왠지 가보고 싶은 마음은 터럭만큼도 없었던 내게 뜻하지 기회가 생겼다.
갑자기 가려니 학교 때 배운 히라가나가 어쩌면 한 글자도 생각이 나지 않던지..
평소 일본 만화나 오락을 즐겨하던 친구들이 지금은 놀랄만한 실력으로 줄줄 읽어내려가던 걸 보면, 아직 인사말밖에 못하는 난 일본에 대해 참 무심했던 것 같다.
어쨌든 막연한 두려움 보다는 까잇거 한 번 두 발로 밟고 느껴보자는 심정으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다행이 내 성격이 외국어 한마디 못해도 사막에서 모래를 팔 수 있다는 사실은 진작에 알아버렸다.
밤 22:15분에 출발해서 잠시 눈을 붙이고 나니 벌써 동경 하네다 공항에 도착했다.
일본의 첫 인상은… ‘친절함’으로 다가왔다.
입국 심사대에 줄 서있는 사람들을 돌아다니며 한 명 한 명 입국신고서를 체크해주던 일본 여직원..
그 이후 난 일본인의 몸에 밴 친절을 여러 번 느낄 수 있었다.
나중에는 그게 마음에서 우러나온 게 아니라 일종의 습관적 친절이란 걸 알긴 했지만 말이다.
새벽 1시 반이 되어 도착하게 된 호텔방은 정말 듣던대로 작았다. 방 안에는 침대하나, 티비, 책상, 간신이 샤워할 수 있는 화장실… 딱 고시원에 갇힌 기분이랄까.. 땅값 비싼 도쿄가 몸으로 느껴졌다.
일본식으로 속옷도 안 입고 옆에 가지런히 개어져 있는 유카타를 입어본다.
2006년 5월 13일
간밤에 이런 저런 꿈을 꾸었다. 빗소리를 들으며 눈을 뜬다
밥을 먹고 나서는데 우산이 없다 이런..
바람만 불면 뒤집히는 3단우산을 호텔 로비에서 700엔에 샀다.
나중에 편의점에서 120엔짜리 비닐 우산이 훨씬 좋다는걸 알았지만..
도쿄의 지하철은 복잡하기가 과히 살인적이다. 서울의 지하철이 거미줄에 비교된다면 도쿄는 거미줄 세 겹은 겹쳐놨다고나 할까? 환승하는 곳 찾아다니다가 시간 다 보낼 것 같았다.
하지만..지도를 손가락으로 찍고 실실 웃으면서 말을 붙이기만 하면 되는 친절한 일본인이 있다.
덕분에 한번도 반대로 타진 않았다.
팁이라면 팁인데 정장 스타일 옷을 차려입은 젊은 여자에게 길을 물어보기를~
운이 좋다면 직접 데려다 주기도 한다.
손에는 카메라, 여행 가이드 북 한 권을 들고는 도심속으로 발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신주쿠(新宿)
사람이 많기는 중국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사람들의 옷차림 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내가 처음으로 홍대를 갔을 때의 문화적 이질감을 훨씬 뛰어넘는 다양함과 충격이 존재했다.
하라주쿠(原宿)
언제나 그랬듯이 지하철 역에서 나오고 나면 가이드 북을 찾는다는 건 무의미해진다.
두 눈이 두리번거리면서 발이 이미 내딪고 있는데 언제 책에 고개를 파묻고 찾고 있단 말인가..
열심히 발품을 팔며 돌아다니고 저녁에 돌아오는 길에 책을 보면, 결국엔 유명한 곳은 다 가본 곳일 때가 많다.
오히려 책에는 나와 있지 않은 숨은 진주를 발견할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난 유명 관광지만 눈도장 찍고 돌아다니는 방식의 여행은 그렇게 즐기지는 않는다.
그런 식으로 다니면 적어도 유명한 유적지와 멋진 경치는 많이 볼 수 있을 테지만..
동시대를 살고 있는 소박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들을 엿볼 수 있는 자유여행을 더 즐기는 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반인들의 삶이 크게 흥미거리가 되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마치 우리가 외국인들을 위해 만든 서울에 관한 홍보 영상을 보면서,
63빌딩, 경복궁, 봉산탈춤, 첨성대 같은 평소 실생활과는 동떨어진 내용이 나오게 되면..
왠지 뿌듯하긴 하지만 지루하다는 느낌??… 그런 느낌과 비슷하다.
하라주쿠에서 들른 한 일본 전통 음식점에서 한국인 2세라는 내 또래의 남자 아이를 만났다.
비록 서로 말은 잘 안 통했지만 짧은 대화에서 많은 정보도 나누고,
역시 혼자 먹는 밥보다는 같이 먹는게 훨씬 맛있다는 걸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시부야(涉谷)
패션의 거리 시부야(涉谷) 에서는 동대문의 밀레오레 같은 패션몰에 들어갔는데
7층짜리 건물에 남자라고는 날 포함해서 모두 5명 밖엔 못 본것 같다.
알고보니 여자 옷만 파는 곳이었다.. 괜히 들어왔다 싶다.
계속 비가 온다. 오다이바에서 멋진 석양을 보려했지만 비를 맞으며 자유의 여신상을 카메라에 담는데 만족해야 했다.
아키하바라(秋葉原)
돌아오는 길에 아키하바라(秋葉原) 전자상가를 들렀다.
골목에서 발견한 충격 실화!! 한국에선 음성적으로나 팔릴 만한 음란물 시디가 아키하바라 한 뒷골목에 5층 건물 크기 빼곡히 진열되어 있었다. 양복을 입고 퇴근길인 듯한 남성 여성 고객들이 아주 떳떳하게 음악 시디를 고르듯 진열장 사이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옆 건물엔 성인용품이 또 같은 건물 크기에 한가득 자리잡고 있었다.
중간중간 비디오 상영과 함께…어익후..
아마도 일본에서는 기형적으로 뒤틀려진 性文化가 풀어야 할 최대의 숙제가 아닐까 싶다.
하루 거의 10시간씩 걷다보니 발이 좀 쉬자고 애원을 한다.
아키하바라에서 또 지하철을 못타고 헤매이다가 지나가는 여자분에게 ‘스미마셍’ 하고 SOS를 청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방과 후에는 카레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대생.
나와 반대 방향인데도 200m 가량 직접 지하철 역을 데려다준다.
음료수라도 한 잔 사준다는 말에 끝까지 사양하는 모습에서, 친철한 일본인과 함께 개인적인 공간은 정확히 선을 긋는 두 가지 모습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나쁜 사람처럼 보였다면 할 수 없고.. ;;)
2006년 5월 14일
오늘도 느즈막히 일어났다. 어제 계속 내리던 비는 그쳤는데 기대하던 햇살은 숨은 듯 하다.
이탈리안 빵집에서 신선한 샐러드와 빵을 사들고 우에노(上野)로 향했다.
우에노 앞 넓은 공원에서 여유를 즐기면서 새삼 여행의 맛을 느낀다. 이백의 시 한 수가 떠오른다..
언제 한번 공원에서 저런 여유를 부려보며 취미생활을 할 수 있을런지
어제 도쿄의 현대적인 면을 봤다면 오늘은 좀 일본적이고 옛적인 것을 찾기로 했다.
야나카
야나카(谷中)에서 걸어다니면서 근 세 시간은 보낸 것 같다.
삼청동 골목같은 아기자기함에 푹 빠져버렸다. 아마 도쿄에서 내가 꼽는 나름 최고의 장소가 아닐까 싶다. ^^
나의 여행의 순간은 이곳에서 사는 이들의 일상과 똑같은 속도로 지나간다.
다만 같은 공간에서 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동경역 근처엔 무료로 전망대에 오를 수 있는 마루빌 빌딩이 있다.
이곳에 오르면 동경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진정 행복한 자들이 있으니..
독서의 여유를 만끽하는 자가 아닐까..
긴자(銀座)
긴자(銀座)로 걸어 내려왔다.
정말 맛있는 라멘 집에서 잠시 배를 채우고, 그림 같은 엽서집에서 몇 장 골라서 샀다.
긴자의 한 클래식 카메라 집에 바로 눈이 꽂혀버렸다.
정말 사고싶은 카메라가 있었지만 빈 지갑때문에 좌절했다.
닛산 자동차 매장에서 시승식도 하고..야마하 매장에서 잠시 피아노도 뚱땅대보고..
에비스(惠比寺)를 찾았다.
야경이 정말 멋있는 곳이다.
피곤 이기는 장사 없다고 했던가.. 밤 11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 비행기를 기다리며 의자에 파묻혀 쓰러진다.
뭐니뭐니 해도 공항에서 비행기 기다리는 시간이 세상에서 제일 피곤하게 느껴진다.
하네다 공항
동틀무렵 비행기를 탄다..
다시 오고 싶은 동경이다.
2006년 5월 15일 동해바다 상공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