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크루즈] 지중해에 나를 띄우다_이탈리아 바리
▶Episode 2 of 14◀
내가 바리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대라면
어딜가나 따스한 햇살은 있어도 바리만큼 따뜻하진 않을꺼라는 확신일까?
이탈리아 남부에 위치한,
부츠로 따지면 뒷꿈치에 해당하는 곳에 해안 도시가 하나 있다.
이탈리아의 아킬레스 건에 위치한 바리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 아킬레스의 어머니가
아들을 불사신으로 만들기 위해 제우스에게 간청해 아들의 발 뒷꿈치를 잡고
스티크스 강에 던졌더니 초인으로 변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뒷꿈치만큼은 강해지지 않아서 ‘치명적인 약점’ 이라는 의미로 쓰인다고 한다.
아드리아 해를 사이에 두고 크로아티아와 그리스의 아름다움을 너무 가까이서 바라보다 사랑에 빠져버린 도시
아마도 이탈리아에서 내게 가장 인상적인 도시가 아닐까 한다.
아직 가보진 못했지만 영화 ‘일 포스키노’의 네루다가 살던 카프리섬도 아마 이런 분위기가 아닐까 상상한다
유럽에는 구시가지와 신시가지의 분위기를 확연하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구시가지를 잘 보존해 놓은 곳이 많다.
바리 또한 경계를 따라서 정말 다른 풍경을 만날 수가 있는데,
구시가지를 쭉 걸어서 한번 돌아보다 보면,
이탈리아가 왜 구석구석 빼놓을 수 없이 보석같은 곳이 많은지를 직접 알 수 있었다.
그들의 삶의 현장인 골목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소박하면서도 어딘가 예술적인 느낌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후미진 골목 골목을 물에 떠있는 기분으로 사진을 찍으며 슬슬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사진을 찍는다는 건 꼭 낚시대를 들고 낚시하는 기분 같다고나 할까?
레버를 감고 셔터를 누르면 찰칵 넘어가는 손맛, 월척은 정말이지 가끔 나올 뿐이다.
새로 마주친 골목에서 살짝 고개를 내밀고 한발짝 들어설 때마다 궁금증이 사라지며 느껴지는 벅차오르는 희열.
골목에 있던 한 셔츠 전문점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살펴보는데 푸근한 인상의 아저씨가 다가왔다.
둘 사이에 통하는 말이라고는 오로지 숫자와 사이즈..
내가 셔츠를 집어들면 아저씨는 그저 허스키한 목소리로
Twenty five, Thirty , Thirty five Euro 셋중 하나를 불렀고
XL사이즈가 있냐고 묻자 큰 체구의 자신을 가리키며 “For me? X Large”
날 다시 가리키며 “For you? Large”
결국 라지사이즈의 25유로짜리 셔츠를 손에 들고 기념사진 한방 찰칵!
여행 중엔 나 자신이 외부인이나 구경꾼으로 비춰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익숙해져버린 한 마을의 일부이기를 바란다.
그래서 어딜 가든지 슬리퍼에 츄리닝을 입고 빵을 사러 동네를 오가는 현지인처럼 다니기를 꿈꾼다.
욕심이었을까? 이곳은 동양인 관광객이 적다보니 다니다 보면 오히려 내가 구경꾼이 되는 경우가 일쑤다.
목이 말라 동네의 작은 수퍼에 들러 콜라를 하나 샀는데 어찌나 민망하게 반기던지..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 이란 책이 있다.
꽤 유명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좀 지겹고 공감되지 않는 책이다.
내가 느낀 여행의 기술
1. 많이 못보더라도 널널한 일정으로 발길 닫는대로 질러라.
2. 짐은 최소화(하기사 제일 좋기는 여권과 신용카드) 해라.
3. 제일 맘에 드는 사람과 동행하라.
10년 전 혼자 처음 수동카메라를 들고 떠났던 정동진에서도
일출을 멍하니 바라보며 연신 셔터를 눌렀던 그 떨리는 생생함을 아직도 내 손은 기억하고 있다.
파란 유니폼을 입은 미래의 이탈리아 국대 축구선수들~
잔잔한 마을의 기억만큼이나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도시..
나중에 언젠가 다시 찾아도
구시가지라는 단어를 지니고 있는 이상 크게 변하지 않을 만한 확신을 가진 곳.. 바리..
Minolta TC-1 Minolta X-570 / MC Rokkor-PF 58mm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