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바루의 키나바루 산 트레킹
오늘은 산악 촬영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2010년 어느 가을 말레이시아에 있는 코타키나발루에 촬영을 갈 일이 있었습니다.
코타키나발루(Kota kinabalu) 하면 말레이시아 보루네오섬 북부에 있는 사바주 최고의 휴양지로 알려져 있는데요
"키나발루 산이 있는 도시" 라는 뜻이 코타 키나발루 되겠습니다.
해발 4,095m의 키나발루산은 동남아 최고봉입니다.
제가 거길 올랐습니다.
산 촬영하러요..
최고봉이랍니다.. 백두산 보다 더..
오 마이 갓..
시간을 여유있게 가지고 산을 촬영한건 아니었고
등반대회를 하는 70명의 참가자들과 함께 이동을 해야되는 일정이라
삼각대는 생각할 수도 없었고 Sony XR550 하나 간단하게 들었습니다.
그렇게 무거운 카메라는 아니지만 앞에 광각 컨버터를 끼면 계속 들고 있을 경우 손목에 약간 무리가 오는 정도?
보통 우리가 주말에 산에 가볍게 오르는 건 영어로 트레킹(Trecking) 이라 하고,
전문적인 장비를 갖추고 암벽등반이나 높은 산을 오르는 건 클라이밍(Climbing) 이라 합니다.
아니 무슨 아시아 최고봉을 가볍게 오를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다 있나..
그래서 사실 별 걱정 안하고 올랐는데... 죽는 줄 알았습니다.
자연과 사람에 대해 그리고 내 운명에 대해 진지하게 뒤돌아보게 된 멋진 순간이었죠 ;;
멋진 자연을 영상으로 담고자 떠났던 산행..
말레이시아어로 ‘아빠까바르’ 하면 ‘안녕하세요’ , ‘뜨리마까시’ 하면 ‘고맙습니다’란 뜻입니다.
언어를 적을 문자가 없어서 알파벳을 그냥 발음 나는 대로 발음기호처럼 적는다고 한네요. 택시 하면 ‘tekxi’ 이런 식으로…
먼저 산을 오르기 위해 키나바루 국립공원 안에 있는 산장으로 이동했습니다.
해발 1500m 정도 되는 곳까지는 차로 이동하는데 올라가는 동안 좌측통행 꼬불길을 이리저리 올라가다 보면 멋진 산능선들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뭐 백두산도 북파코스로 가면 요즘 꼭대기까지 차 다 올라갑니다 ㅋㅋ
오후 세 시가 넘어가면 한 두 시간 정도 약한 소나기가 내리는 게 일상인 동남아의 날씨…
비가 개고 나면 환상적인 구름이 눈을 즐겁게 하죠.
키나바루 국립공원에 도착했습니다. 버스가 들어가지 못하는 국립공원 입구부터는 봉고나 승합차로 나눠 타야 됩니다.
짐을 가득 실은 봉고가 어두운 시골길을 달리다가 조금만 경사를 만나도 젖 먹던 힘으로 시속 20km를 간신히 유지하며 털털거리며 올라갑니다.
어느덧 해가 어둑어둑해지고 예전 록키산에서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를 때 쯤 해발 1500m의 메실라우 산장(Mesilau Nature Resort)에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산장이라고 어떨지 궁금했는데 나름 샤워실도 방마다 달린 방 세개의 팬션같은 아늑한 분위기더라구요
<메실라우 산장>
내일 올라갈 지도를 보면.. 현위치 해발 1,500m 메실라우 리조트에서 시작해 라양라양(Layang-Layang) 숙소를 지나 라반라타(Laban Rata Rest house) 까지 가서 잡니다..
그곳에서 저녁에 일찍 잔 뒤 새벽 두시에 일어나 출발해 4095m 최고봉(Low's Peak)에서 일출을 보는 일정..
산행 경험이 별로 없던 내겐 나름 살인적인 일정이었죠 ㅋㅋ.
다음날 아침 메실라우 리조트에서 아침을 먹고 산을 올랐습니다.
날씨가 좋아 산행에 큰 무리가 없을듯 했습니다.
산에는 짐을 들어주는 포터가 있는데, 돈을 벌기 위해 싱가폴에서 영어 할 줄 아는 친구들이 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용은 짐 1kg에 4,000원.
보통 성인 배낭 기준으로 무게가 7~8 kg에서10~12kg 정도니까, 그래봐야 왕복 이틀에 5만원 정도가 일당이네요
돈을 좀 더 벌어 보겠다고 가방을 두세개 까지 등에 지고도, 고무신 하나 신고 사뿐사뿐 산책하듯이 오르던 친구들을 보면 기가 막힙니다.
저는 영상 촬영이 목적인지라 짐을 포터에게 맡기고(얼마나 다행인지), 한결 가벼운 발걸음으로 1시간에 1km 정도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천천히 천혜의 아름다운 자연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전진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등교길엔 백 개의 계단이 있었습니다.
매일 아침 등교길을 3년간 오르다 보면 여학생들의 굵은 종아리를 보장하던 그 공포의 계단…
키나바루 산의 등산로는 자연적인 산길보다는 많은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백계단 끝에 또다른 백계단이 시작되고, 그게 반복되기를 일곱 여덟차례 되면…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하죠
원래 그런 곳은 끝이 보여야 희망을 가지고 올라가는데 말이죠..
경치를 떠나 올라가는 길 만큼은 아기자기함이 없고 지루한 ‘매너 없는 산’입니다.
산행한다고 등산화도 하나 샀어요..
키나바루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오르면 못오를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아니 오르면 말도하지 말기를…
산을 오를 땐 지치면 쉬면되는 간단한 원리만 알면 됩니다.
산을 겁 낼 것도 없지만 우습게 생각해도 되는 게, 자기만의 페이스만 찾다 보면 결국 정복할수 있죠..
Slow & stady wins the race 라고 했던가. 결국은 자기와의 싸움인데..
다른 이들이 나를 휙 앞질러 먼저간다 한들, 엊그제 이미 다녀간 사람도 있을텐데 속도 경쟁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Film : Jin(Movie Maker) / Camera : Sony XR550 / Edit : AMC5
어라? 해발 2500m를 올라가면서부터 머리가 살짝 지끈거리기 시작해 일단 아스피린을 하나 먹었습니다.
고산증세.. 그분이 오셨네요..
이거이거 사람 죽입니다..
예전 중국 구채구에 갔을 때 황룡(해발 3800m 정도)에서 처음 느꼈던 고산증세가 다시 온것 같더라구요..
일단 멀미가 나고... 몸에 힘이 쫙 빠지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집니다. 구토증세도 있구요..
고산 약이라고 미리 먹긴 했었는데 저한테는 효과가 없었습니다.
원래 고산은 약이 없어요. 다시 낮은 곳으로 내려와야 괜찮아집니다..
물론 사람마다 높은데 올라간다고 다 그런건 아니에요... 가봐야 자기가 고산증세가 있는지 알게됩니다. ㅋㅋ
해발 3000m쯤 올라가다 보면 구름 층을 지나가는데 안개비가 추적추적 내립니다.
일단 카메라 다 젖을까봐 촬영은 잠시 접었습니다.
점점 머리가 아파 100미터 걷고 잠시 쉬고.. 점점 페이스가 쳐지게 됐습니다.
촬영한다고 선발대로 출발했는데.. 어느덧 이미 70명의 산행대원들이 다 저를 앞질렀습니다. 영광의 꼴지..
심지어 또래의 태국 청년들이 갤갤데며 쉬어가는 저를 부축해주며 "You can do it" 외쳐면서 앉아있는 저에게 힘을 주더군요
아주 쪽팔린 짓은 국제적으로 다 했습니다.
드디어 라반라타 산장에 도착했습니다. 기진맥진에 거의 실신상태..
구름을 뚫고 올라와서 보니 장관이긴 한데 견딜 수 없는 두통이 와서 정말 힘들었습니다.
여기서 일단 저녁먹고 자고 새벽2시에 일어나 다시 정상으로 올라가야 됩니다.
저녁먹고 밖에 나왔는데 구름에서 천둥번개가 치는 장면을 영상으로 잡았습니다.
정말 장관이더라구요. 구름 위에서 발밑으로 천둥치는 번개를 잡을 수 있는 기회가 흔하진 않을텐데 말이죠..
2층 침대 두 개가 마주보고 있는 숙소로 들어와 잠을 청합니다.
화장실에는 샤워기가 있어요.. 볼일보고 왼손으로 해결하는 말레이시아 문화..
네, 전 물론 전 휴지 챙겼습니다..
어쩄던 새벽까지는 꼭 두통이 가시길 바랬습니다.
다음날 아침…
결국 두통으로 인해서 새벽 정상정복은 실패했습니다. 두통은 여전히 심하고 오한까지 오더라구요.. 가지가지 합니다.
촬영 갔던 카메라 마저 동료에게 사용법만 알려주고 이불을 뒤집어 쓴 채로 침대 속에서 부들부들 떨며 꼼짝도 할 수 없었습니다.
영상에서 마지막 정상장면이 좀 흔들린 이유가 그건데.. 더 현장감있게 나와서 다행입니다 ㅋ
정말 아시아 최고봉까지 왔는데 정상을 밟지 못한 아쉬움도 컸고… 어딜 가든지 몸이 제일 중요하다는 걸 새삼스레 깨달았습니다.
다시 하산하는 도중에 맑은 날씨의 하늘을 다시 볼 수 있었습니다.
사진들은 다 아이폰3GS로 찍었습니다. 영상 찍는 사이사이..
이런 죽을 고비를 어떻게든 남겨야 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아무튼 언젠가 다시한번 오고 싶다는 진부한 결말을 절대 쓸 수 없는 키나발루 산 촬영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