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선동 맛집] 益善洞 골목에서 만난 생경한 풍경
퇴근 후 익선동을 들렀다.
이미 몇 차례 휘 둘러보긴 했지만 사람이 북적대지 않는 평일 저녁이 그나마 다니기 제일 좋다.
낙원상가를 지나 조금만 들어가면 바로 나오는 동네..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왠지 이비스 호텔이 동네를 내려다보고 있는 느낌이다.
저기 묵을 일은 없겠지만 호텔 뷰가 어떨까 궁금하긴 하다.
수표로.. 이름이 참 부자동네일 것 같다.
골목 골목 다니다 보면 새로 보이는 식당도 많이 생겼고.. 가옥을 헐어 리모델링도 한창이다.
곧 젠트리피케이션이다 해서 마을을 떠나는 주민들도 생기겠지만... 아직 상수나 압구정처럼 되려면 한참은 먼 듯 하다.
나이는 오래됐지만 요즘 문화에는 갓 눈을 뜨고 있는 힙한 골목이기 때문에..
새로 생기고 있는 상권들이 성수동 같은 어떤 특징 있는 문화적인 배경을 가지고 새롭게 변화하는 게 아닌 것이 좀 아쉽긴 하다.
워낙 주택가였긴 했지만 단지 느낌있는 맛집들이 줄지어 들어서는 느낌이랄까..
언젠간 서울 사람은 찾지 않는 인사동처럼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맛집 투성이인 삼청동 팔판동보단 그나마 가회동이 난 더 좋다.
만둣집 앞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떠날 때쯤 나도 슬슬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다.
거북이 수퍼의 먹태 굽는 냄새가 골목을 메웠다.
여긴 평일 오후에 반차를 내고 먹는 낮술이 기가 막히지..
동네로 스며든 크래프트 비어의 전성기를 처음 만난 곳이기도 하다.
굳이 오랜 경양식 돈까스의 맛을 보려면... 어머니한테 해달라고 하면 될듯 하다.
프로스트?
이태원?
밤이 어두워 갈수록 골목골목 다니다 보면,
멋진 한옥 창문 안으로 세련된 조명의 펍들과 레스토랑, 카페와 라운지 바들이 하나둘 빛나기 시작한다.
마치 한복을 입혀놓은 알파고가 여유 있게 바둑을 두고 있는 생경함이랄까..
수제맥주가 맛있는 크래프트루. 수요미식회에 맥주가 맛있는 집으로 나왔다
이장수?
라운지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잠시 골목으로 들어가 가게 안을 구경했다.
캬... 익선동에서 라운지 바라니... 섹시하기 그지없다.
서촌에도 이런 분위기의 가게가 있었던가..
아무튼 자기 이름 석 자를 건 가게들은 어찌됐던 잘 돼야 된다..
뒤돌아 골목을 바라보다 사진을 찍었는데 한 소녀가 화면에 잡혔다.
필름카메라였으면 더 느낌있는 사진이 나왔겠지만..
한동안 출퇴근 때도 손에서 놓지 않던 카메라가, 어느덧 책장 위에서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는 게 미안했다.
아쉬우니 한 번 더 프레이밍..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골목..
정체성을 알 수 없는 듯한 다양한 느낌의 가게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며 사람들의 발길을 유혹하고 있는 듯했다.
이건 오리엔탈풍이야... 사주보는집이야..
커피 케익 맥주 칵테일 와인을 판다는건...
소주만 안 판다는 거겠지.. 물어보면 내줄지도 몰라..
교토에서 봤던 전통적인 양식의 에르메스 매장이 생각났다.
이 집은 지나갈 때마다 꼭 한번 가보고 싶은 집이긴 한데.. 이 동네에서 가장 큰 데시벨의 음악을 틀어주는 집이다.
대청마루에 앉아 와인을 즐기며 라운지 음악부터 필받으면 클럽뮤직까지...
지인들과 밤새 흥청망청하고 싶은 집이다.
뭐 굳이 인터넷 검색해서 맛집을 찾기보다는 발길이 닿는 꽤 멀끔해 보이는 파스타집으로 들어갔다.
이태리 총각이 하는 집이니 잘 하겠구만
알리오 올리오를 좋아하긴 하지만.. 왠지 가게에서 돈 주고 먹기엔 좀 아깝다는 본전 생각이 들곤 한다.
봉골레도... 해 먹는게 맛있어..
그래서 결국 고른게 해산물 토마토 파스타와 까르보나라
까르보나라는 왠지 대학교 때 노원역에서 먹던 그런 느낌일 것 같지만 그래도 한 번 믿어보기로 했다.
잔으로 시킨 화이트 와인이 나왔다.
한 모금 마셨는데 취기가 확 올라온다.
뭐야.. 무슨 와인이길래 이렇게 맛있어? 병으로 시킬껄
프랑스 어쩌고 칠레 투자와인 ? 응?
역시 리저바여서 맛있었나보네..
아무튼 강추.. 작업중이라면 병으로..
배고파서 맛있었던 건지 원래 음식을 잘 하는건지.. 맛있게 먹었다.
그럼 됐지.
저녁 한 끼에 54,000원을 기분 좋게 낼 수 있었던 알딸딸한 익선동의 저녁이 흘러간다.
나오다 보니 대학로에서 보이던 재즈카페 천년동안도가 보인다.
검색해보니 대학로에서 익선동으로 이사 온 거네... 역시 힙한 동네였어... 재즈가 왔다 이거지..
대학때 재즈에 처음 빠져서 혼자 카페에 가서 옆 테이블 마시는 걸 보고 '저거 주세요' 했다가 나온 데낄라를
나도 그럼 한번.. 홀짝이다가 컥! 콜록콜록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직도 쪽팔려..
신관웅 빅밴드라는 반가운 이름을 보니.. 조만간 그때를 추억하며 혼자 또 가보긴 해야겠다.
챗바퀴 같은.. 매일 똑같아서 기억이 나질 않는 바쁜 직장 생활 가운데..
또 하나의 추억으로 남을 듯한 아름다운 밤이다.
2017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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