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밤의 짧은 기억 _ 장 자끄 상뻬
대학교 복사실 알바의 추억/h3>
2002년 6월 14일
한일 월드컵 16강을 놓고 사투를 벌인 포르투갈전이 치뤄지던 그날..
온 학교 학생들은 응원을 가고, 휴학 중에 복사실에서 알바를 하던 난 아무도 없는 외로운 도서관 2층 구석 복사실을 지키고 있었다.
'기말고사 기간이라 북적댈 만도 한데 이런날.. 이 큰 건물에 나밖에 없구나.. 휴..'
빨리 9시가 되서 응원하러 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문밖에서 기척이 들린다.
청바지에 약간은 낡은 플란낼 셔츠를 입은 여대생이 유리문 밖으로 보였다.
"지금 복사 되나요?""네 들어오세요~"
'오.. 아직 도서관에 사람이 있다니..'
그 학생은 나처럼 응원의 열기에는 관심도 없는듯 보였다.
복사실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와 양손에 무겁게 든 다섯권의 책을 책상에 내려놓고는 양 볼에 조그맣게 보조개를 만들며 내게 말을 걸었다. 아니 걸었던 것 같았다.
"복사 한장만 해주세요"
하얀 손 끝으로 가린 펼쳐진 그곳에는 노란 포스트 잇이 살짝 표시되어 있었다.
'응? 그림책이잖아?'
그녀가 나머지 다른 책들을 펼치며 정신을 집중하고 있을 때, 난 최대한 전문가스럽게 능숙히 복사를 하며 슬쩍 슬쩍 책으로 눈길을 돌렸다.
"
내일까지 과제 제출할게 있어서요 ..축구보러 안가세요??" "아.. 전 아홉시까지 여길 지켜야되요 학생같이 늦게까지 오는 사람이 있어요"" 아.."
'젠장 내가 지금 무슨말을 해버린거지..'
복사는 하고 있었지만 무슨 삽화라는거 이외엔 눈에안들어왔다.
엷은 오랜지색 플란낼셔츠의 그녀는 노란 포스트잇 조각을 남기고 다시 들어왔던 문으로 나가버렸다.
'후...이놈의 작업멘트는 왜그리 힘든건지..' 복사기 위에는 잘못 카피된 첫 장이 놓여있었다.
<장 자끄 상뻬>
'누구지 만화간가? 나도 슬슬 정리하고 응원이나 나가자.'
그때 누군가 다시 문으로 들어왔다.
"어?"
아까 나갔던 학생이 손에 음료수를 들고 서있었다.
"저 때문에 나가지도 못하셔서 죄송해서요 ^^"
"
아.. 아니에요. 어차피 지켜야 되는데요 뭘.."
왜인지 모르겠지만 자꾸 웃음이 나왔다.
23살 복학생..연습은 끝났다.
"저,안바쁘시면 운동장에 응원하러 같이 가실래요??""예??""지금 전반 끝날때 됐는데 아직 자리 있데요 같이 가요 언제 한국에서 또 하겠어요"
마침 운동장의 붉은 물결은 한국이 떠나가라 밤과 춤을 추고 있었고,
포르투갈을 좌절케한 그물망의 흔들림은 젊은 청춘의 싱숭생숭한 마음을 요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승리의 함성에 묻은 두 손바닥의 짧은 마주침.. 심장의 고동소리가 그렇게 크게 들렸을까.
아쉽게도 그 후로 그 여학생을 다시 마주칠 기회가 없었다.
장 자끄 상뻬의 삽화을 보고 있노라면 삶이 그림이 되고 그림이 삶이 된다.
그리고 한 여름 밤의 짧은 기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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